미국 대학 여름 캠프

지금 아이는 미국 대학 여름 캠프 중이다. 전공은 Biology이지만, Philosophy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는 이번 캠프에서 학점을 딸 수 있는 두 과목을 writing과 marine biology를 선택했다. biology는 나름 자신있다고 생각했지만 외울 것이 생각보다 많았고, writing 과목은 캠프 기간동안 7권의 책을 읽어야하고, 매주 10장 정도의 에세이를 써서 제출해야 한다는 것을 코스 선택 후 첫 수업 때 알게 되었다. 거기다가 15명으로 구성된 클래스 학생 중 아시아인은 혼자라고 한다. 12명은 미국인, 두 명은 어릴 적부터 영어를 사용하여 미국인처럼 영어를 잘하는 독일인과 터키인이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학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어서 수업은 질문과 토론으로 열정적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영어를 조금 한다고 생각했어도 유학간지 1년밖에 안된 아이는 원어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단어량과 영어 구사력 때문에 질문을 하는 것 조차 방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에 위축되었다고 한다.

작년 유학 가서 만난 첫 영어 과목 담당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에 악명이 높은 교사로 아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점수를 주지 않았고, 몇날 며칠을 거의 밤새며 써서 제출한 시 작품도 주관적인 평가로 최저점을 주는 등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해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아이는 자신이 정성스럽게 쓴 시가 정말 그렇게 형편없는 수준인지 검증받고 싶어 대회에 시를 제출했는데, 그 시가 미국의 수준있는 대회에서 상을 받아 인정 받고는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는지 그제서야 편안해했다. 그런 이유로 아이는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과목 대신 자신의 성장을 위해 캠프에서도 writing과목에 도전했다.

캠프 첫 주, 4일간 잠도 못 자며 고심해 써서 낸 첫번째 에세이에 대한 교수님의 피드백은 ‘너의 에세이에서 너의 영어의 한계가 보인다.’ 라는 혹평을 받았다. 캠프에 가면 실험도 하고 새로 만난 친구들과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아이는 글쓰기 수업 과제로 주말이면 하루 15시간 이상을 사용하며, 그 피드백에 따라 수정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두번째 피드백에서도 ‘너의 ambition이 보이나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간다.’ 라는 평을 받고는 아이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된다고 글쓰기가 두렵다며 울었다. 논문 수준의 에세이를 봐줄 수 없는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괜찮아.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도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고 대견해.’ 라고 얘기하는 것과 그냥 들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아이는 학교에서 서비스하는 writing center도 예약을 잡아 자신의 에세이가 어떤지 점검 받았는데 좋았다고 했다며 내 에세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교수님의 피드백을 들어도 모르겠다며 불안해 했다. 교수님이 지정한 extra help 시간에 빠지지 않고 갔기에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교수님은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 말조차도 위로가 안되고 열심히 노력한 그 시간들이 다 헛된 것처럼 느껴져 ‘전 더 이상은 할 수 없어요.’ 라고 말하며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강의실을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금요일 5시에 도서관이 문 닫는지도 모르고 모든 짐을 도서관에 두고 저녁을 먹고 왔는데 문이 닫혀있는 것을 보고는 어쩔 줄 몰라하며 새벽에 전화가 왔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바로 토요일, 아이는 주말에도 마음이 편치 않아 나가고 싶지 않다고는 했지만, 친구와 함께 가기로 미리 예약한 Whale watching tour를 하러 나갔다. 한 시간 넘게 크루즈를 타고 바다로 나간 아이는 넓고 푸른 바다 한가운데서 놀고 있는 크고 빛나는 고래들을 보았다. 고래의 꼬리 한쪽 크기가 보트 한 척만 했다고, 그리고 정말 탄탄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까만 고래들을 보고 처음 느껴보는 극도의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이는 고래를 보고 와서는 의지가 불타오른다며 에세이 수정을 반드시 해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카톡 메세지에 이 말을 남겨주었다. ‘한국 사람이 국문학을 전공할 때 기대하는 것과 외국 사람이 국문학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기대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거야. 외국 사람이 국문학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는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이 또 다른 의미로 국문학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기대할 것 같아. 마찬가지로 영문학을 공부하는 한국인이 다양한 시각으로 영문학을 재해석 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창의적인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과 끝까지 해내려는 의지와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 메세지에서도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게 주말 내내 아이는 다른 모든 일을 제치고 에세이 수정에 몰입했다.

아이는 에세이 수정이 끝났다며 연락이 왔다. 생각을 재구조화해서 새로 고친 내용을 다시 보니 이전 에세이의 단점이 보였고, 수정 점검 후 드디어 제출했다고 했다. 며칠 잠을 잘 못 잤다고 했다. 그리고 제출 다음 날 아이는 선생님께 칭찬받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같은 표정의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의 제목은 ‘선생님께 칭찬 들었을 때 내 표정’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 에세이가 내 앞에 놓여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존경심과 경외감이 느껴진다. I appreciate your effort!’

이번 에세이를 쓴 후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공부를 하다보면 머리가 벽에 닿은 듯 생각이 더 이상 안 나는 그런 상황이 온다. 그러나 그 벽을 뛰어넘어 한계를 극복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비록 힘들고 에너지 소모가 심하지만, 내가 성장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에세이를 쓰기 전에 내 이전 점수들 때문에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에세이를 통해 영어 공부에 동기 부여가 되었고, 고심하며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내 노력의 진짜 가치는 성적이 아닌 내 스스로의 성장과 내면에서 보여짐을 깨달았다. 현재 나는 새로운 에세이를 쓰고 나 스스로를 더 높은 단계로 챌린지 하는 것이 행복하다. 그리고 이런 성장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이곳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캠프 기간 동안 학교 관계자나 교수들과 오픈 토론이나 토크를 할 수 있는 워크숍들이 있어 신청했다고 한다. ‘컬리지 입학사정관과의 대화,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3가지를 신청했다고 하며, 시간이 중복되어 다른 친구들이 하는 ‘컬리지 컨설팅’ 대신 ‘행복이란 무엇인가’ 를 선택했다고 했다. 엄마 입장에서 보기엔 컨설팅이 더 유용해 보이는데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자신이 꼭 묻고 싶은 궁금한 점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궁금했지만, 잘했다고만 했다. 과연 행복이라는 주제로 어떤 이야기들을 할지 워크숍 후 아이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전세계에 100권 밖에 없는 1800년대 책, 지하 4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도서관에서 760만원짜리 초판 책을 직접 본 경험을 한 것은 아마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감정으로 오래 기억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혼자 타지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하며 힘든 순간들을 극복해가는 아이의 말들을 기억하고 싶어 글을 적어보았다.

오늘도 우리 가족은 너를 응원해. 사랑한다. 무엇보다 건강 챙기렴.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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