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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전전두피질은 충동적인 감정들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 기능이 과활성화가 되어 일시적으로 제기능을 못하고, 호르몬에 의해 감정이 격해져 자신의 기분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거나 잘못 해석하여 심한 말을 쉽게 한다. 거기에 상황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떨어져 상대의 의도를 왜곡하기도 한다.
사춘기 아이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해야할 것들에 대한 무게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시기이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해 급격하게 기분이 변화되는 감정 조절의 어려움,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 성취와 성적 등에 관한 주변의 기대감 등으로 압박이 심하다. 때로는 자녀가 불합리한 사고를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며, 부모에게 반항적으로 행동하면서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런 시기를 건강하게 보내기 위한 예방법은 부모가 자녀의 공감 능력을 키워주고, 자녀가 태어나서부터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이다.
공감 능력은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이 있다. 인지적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대한 그 사람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수많은 경험과 연습을 통해서 길러진다. 인지적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맥락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 정서적 공감은 감정 이입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친구에게 다가가 위로하거나 함께 걱정하는 등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한다. 이것은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부모가 자녀로 하여금 상대방의 감정이나 마음을 살펴보도록 하면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애착은 자녀가 어릴 적부터 부모가 민감하게 자녀의 감정을 돌보고 적절한 반응을 해주어야 형성된다. 애착이란 생애 초기에 가까운 사람에게 강한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며, 생존을 위해 믿을 수 있는 양육자에게 붙으려는 양상을 말한다.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된 아이는 적극적으로 주변을 탐색하며 적응하나 그렇지 못한 아이는 부모의 눈치를 보며 위축되어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에 가정 환경 속에서 두려움을 느꼈다면 아이들은 내면의 상처를 다룰 수 있는 내적 자원이 없기에 감정을 처리하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소중하게 다루어주고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가슴에 저장하지 않도록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자녀는 안정감을 느끼고 그것을 바탕으로 도전과 경험을 통한 배움이 이루어진다. 어릴 적 자녀의 정서적,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고 느낀다면 지금부터라도 자녀의 관심사를 알아주고, 자녀가 불편해 하거나 요구하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주며, 자녀의 감정을 차분하게 수용해주자.
사춘기는 아니지만 1학년 아이들과의 이유있는 스토리를 적어본다.
얼마전 우리반 아이들과 영화 수업을 하며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말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내 모든 감정이 소중하며 그 감정들을 스스로 다룰 줄 알아야 함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우리반은 아침에 오면 칠판에 붙어있는 100가지 감정을 묘사한 그림과 글씨가 적혀있는 표에 그날 자신의 감정과 가까운 곳을 선택하여 자기 이름이 적혀있는 자석을 붙인다. 그리고 매일 돌아가는 감정 반장이 감정 활동을 진행하고 친구들이 발표할 때마다 ‘그랬구나, 왜 그런 감정이야?’등을 물으며 호응해주고 격려해주는 시간을 갖는다. 그 10분 동안 아이들은 매우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한다. 부모님께 혼나거나 맞아서 슬픈 감정, 형제, 남매, 자매와 싸워 속상한 감정, 여행을 다녀와서 신난 감정, 그날 방과후 수업이 기대되는 감정, 학교에 와서 즐거운 감정, 이유는 모르지만 짜증나거나 외로운 감정 등을 가감없이 발표한다. 그리고 친구들은 같이 걱정하거나 함께 기뻐하는 등 공감해주는 과정을 거치며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화가 나는 감정도 나쁜 것이 아니라 소중한 내 감정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화가 나는 감정은 수용받을 수 있지만, 화가 나서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이 있다는 것과 그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준다.
우리반 아이들이 소중하듯 아이들의 감정도 소중하다. 그러나 1학년 아이들 중에는 친구들의 한마디에 울거나 선생님의 훈계에 쉽게 눈물을 보이고 장시간 엎드려 삐져있는 등 감정 조절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아이들에게 다가가 감정을 풀어주려고 하면 그 아이는 누군가가 달래주고 원하는 것을 들어줄 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울거나 삐져있을 때 왜 그런지 이유를 묻고, 이유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리고 ‘그랬구나’라고 공감해준 후, ‘너는 너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 너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너이고, 다른 사람이 달래주기를 바라고 기다리면 안되는거야. 감정은 너의 것이기 때문에 네가 스스로 네 감정을 알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해. 너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선생님은 믿어. 오늘은 네가 울고 싶으면 울고 삐져있고 싶으면 삐져도 괜찮아. 하지만 다음번에는 이렇게 울거나 삐져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해야만 해. 이런 행동은 너에게도 좋지 않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도 불편함을 줄 수 있거든. 우리 그렇게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다같이 노력하자.’ 라고 말해준다. 그 후 울거나 삐져있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다시 바른 자세로 앉았을 때 칭찬을 해준다. 그리고 ‘거봐. 너는 네가 생각하는대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아이야.’라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은 아이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아이들도 감정은 그렇게 스스로 조절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서로 노력하는 모습을 인정해주는 과정은 원만한 교우 관계 형성과 개인의 자존감 형성에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해준다. ‘지금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이런 모습이 너와 어울리는 모습이야. 잘했어.’
현재 우리반 아이들은 울거나 삐지는 행동이 현저히 줄었으며, 그런 일이 생겨도 스스로 조절하여 금새 건강한 감정으로 회복된다. 꾸준한 관심과 사랑이 담긴 언어는 아이들을 변하게 한다고 믿는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잘 관찰하고 요구에 즉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해주며, 감정과 행동을 분리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은 수용해주되 그것을 표현할 때, 해서는 안되는 행동에 대해 일관되게 교육하고 부모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는 건강한 사춘기를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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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며,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사춘기라면 이 시기의 발달 단계에 맞는 보편적인 학습과 자율성, 자존감을 키워주어 사회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녀는 자신의 길에 집중하며 그로부터 만족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문제, 교육 시스템의 문제 등으로 발달 단계에 맞는 성숙함은 소홀히 생각하고, 결과 중심의 성적과 성취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안타깝게도 부모의 기대를 자식의 결과로 보상받고자 하는 욕심이 사춘기 자녀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한다.
최근 의대 열풍으로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의대를 가기를 바라며 어릴적부터 선행을 시킨다. 그렇게 선행을 하고도 고등학교에 막상 들어가면 1등급 4%의 학생들은 그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1등급이 아닌 학생들은 최상위권이 되기 위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공부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부모들이 생각보다 낮은 자녀의 성적에 실망하고, 그 마음이 그대로 자녀에게 전해져 학생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힘들어한다. 다수의 부모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자녀의 성장 과정을 격려하기 보다 결과를 중시하며 자녀를 다그친다. 이런 부정적인 피드백은 자녀로 하여금 자신이 부모를 실망시키는 존재라 여기게 하고, 비현실적인 기대에 ‘죽고 싶다’는 말을 쉽게 내뱉기도 한다. 이런 마음은 결국 아이와 부모 사이에 벽을 만든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얻지 못하는 안정감을 또래에게서 찾는다.
관계에 있어서 또래의 영향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강한 영향을 미치므로 부모는 자녀과의 관계 만큼 자녀의 또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 살피며 긍정적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살펴야 한다. 그리고 문제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부모와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부모가 자녀의 감정을 공감하기에 앞서 불안정한 양육 태도를 보인다면 갈등은 깊어진다.
자녀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녀는 또다른 내가 아니다. 자녀와 나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하기에 나를 투영하여 여러 형태로 통제하는 것이 아닌 자녀와의 원만한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녀는 자녀만의 자율성과 자존감과 능력이 있는 존재로 안정적인 독립을 위해 지지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물론 하면 안될 행동과 안전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경계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 외에는 대화를 통해 수용해주고,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부모는 차분함을 유지하여 신뢰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춘기의 에너지를 모아 긍정적인 변화로 이끌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가지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자녀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그 시기의 발달 단계를 성공적으로 잘 이뤄왔다. 그것 만으로도 참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자녀가 그동안 이룬 작은 성취 경험들에 관한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것은 자녀의 변화에 대한 부모의 두려움도 줄이고, 자녀의 자존감 형성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많은 도전과 시행착오들 속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고 사랑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평화롭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춘기 시기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아 더욱 어렵다. 부모와 자녀가 대화와 애정으로 잘 넘겨야 하며, 두려움으로 인한 불안감과 애정으로 인한 안정감 중 어떤 것을 더 많이 갖고 가느냐에 따라 사춘기의 성패가 좌우된다.
아이들의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의 감정 앞에서 부모 만큼은 더없이 차분해야 한다. 사춘기의 분노는 당연히 찾아오는 감정이어서 통제나 억압의 방법으로는 관계가 더 악화된다. 권위에 반항하고 반발하며 자신의 것들을 찾아가는 시기가 사춘기이다. 그러기에 아이가 흥분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렇게 기다려주면 감정은 사그라진다. 아이가 감정적으로 예민할 때는 아이 감정보다 먼저 부모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부모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며 아이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부모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울 땐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 그리고 부모가 잘못했을 때는 자녀의 마음에 흉터가 남지 않도록 자녀에게 사과 해야 한다. 부모가 감정을 다스리는 방식은 자녀에게 대물림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늘 화내고 짜증 내는 부모와 살고 있는 아이들은 그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사춘기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있다. 이는 조용히 지나간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사춘기를 갱년기에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녀의 사춘기 시기에 감정을 적절히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도록 공감해주어 혼란과 불안의 시기를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지금도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부모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자녀가 No라고 말할 때 경청하며 의미있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땐 부모도 자녀와 마찬가지로 부족하고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며 자녀의 그런 여러 감정들에 대해 공감해준다면, 자녀는 부모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지원자로 여길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받았다고 느낄 때 상대에게 마음을 연다. 자녀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부모가 수용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힘든 상황에서 부모를 찾게 된다. 부모는 자녀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기에 자녀의 변화를 성장의 과정으로 여기고 자녀가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차분하고 일관되게 코칭하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칭찬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아동기보다 더 크다는 것을 놓치지 말자. 지금도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춘기 자녀들의 노력을 알아주고 칭찬해주면서 이 시기를 통해 배려와 감사를 배울 수 있도록 보여주고 기다려주고 존중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