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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노벨평화상에 이어 2024년 노벨문학상 소식으로 한국 정치가 아닌 문학으로 관심이 쏠린 듯 하지만, 사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나라 정치 폭력과 역사를 다루고 있다. 몇개의 국제 수상 작품으로 작가의 작품을 평론할 수 없지만, 초등 시기에 다루면 좋을 이 역사적인 기록을 1학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했다. 가끔은 1학년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아이들에게 세상 소식을 전하며 생각을 나누곤 한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NIE교육의 효과를 알기에 아이들에게 시사적인 것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주고 싶다. 노벨상에 대해 설명해주고, 그동안 노벨상을 받은 위인들에 대해 설명해주며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수상 작가의 작품들에 대해 짧게 설명해주어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눈빛이다. 현재도 일어나는 전쟁과 폭력으로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작가, 작품의 영광을 번역가에게 돌리는 겸손함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우리나라 역사와 문학 작품에 관심을 갖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해주니 현재 대통령의 이름과 어떤 대통령인지도 묻는다. 어떤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는지, 몇명이 후보이고 몇명이 받을 수 있는지, 상금과 메달을 보여주었다. 한 아이가 “선생님도 노벨상 받을 수 있어요?” 물어서 순간 당황했다. 선생님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냐 물었는데 그렇다는 순수한 아이들의 대답과 몇가지 이유도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뭔지 모를 뭉클함을 느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잘 돌봐줘서, 선생님이 예뻐서, 선생님이 잘 가르쳐줘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사랑해서…”내가 아이들에게 진심인 것이 아이들에게 전해진 것 같아 고맙다고 말하고, 너희들도 이런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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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교보문고에서 큰아이가 읽은 책이 ‘소년이 온다’ 였다. “엄마, 이 책 여기 읽어보세요.” 아이가 보여주는 책의 첫 페이지 글을 보며 시적 표현에 감탄했던 것이 생각난다. 언제 키워졌는지도 모르는 정의감이 내 맘 속에 늘 있기에 역사적 사건을 다룬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영문으로는 읽어보고 싶어 주문했다. 이번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먼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부모 아래서 자랐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가족 모두 문학가 집안이어서 어두워질 때까지 책을 읽었고 공상을 많이 했으며, 대학에서도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시로 등단했다고 한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문학적 자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저 아버지의 서재에서 맘껏 책을 가져다 읽고, 늦은 밤 조용히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란 것이 가장 큰 영향인 것 같다.”
살아있는 한 글을 쓰겠다는 아버지와 가난했지만 작가의 꿈을 응원한 어머니. 지난 주간학습안내 감동 부모에는 이런 문구를 넣었었다. ‘자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가 어떤 모습으로 아이의 삶에 존재했느냐이다.’ 가장 훌륭한 교육은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반 주간학습안내에는 2학기 때부터 ‘감동부모’라는 란을 만들어 부모들이 한번쯤 생각하고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모든 교사들은 말한다. 아이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고, 부모를 보면 아이를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우리는 모두 부모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답을 모르고 그저 최선을 다하며 내가 아는 만큼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함께 배우며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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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라며 학교 개교부터 현재까지 국제적인 상을 받은 학생의 이름을 새긴 아담한 비석을 학생들이 잘 보이는 길 좌우에 이어 심어 놓았다. 우리나라는 왜 세계 최고의 노벨상 수상자가 많지 않을까. 최고가 되길 바라는 사회에서 말이다.
비교 경쟁하고 협력하지 못하게 하는 입시 체제로 사실 우리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자신도 모르게 비교 당하며 자라고 있다. 내 아이만 양보하다 내 아이만 상처 받을까봐 계속 베풀고 배려하라고 말도 못한다. 학교에서는 계속 어떤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숫자로 아이들을 평가하기에 비전이 있는 꼴찌보다 비전이 없는 1등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 공유와 협력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한 대기업에서는 프로젝트를 위한 팀을 여러 개 만들고 그 중 가장 아이디어가 좋은 팀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해체시킨다. 각 팀은 자기 팀이 이기기 위해 다른 팀과 아이디어를 공유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이런 방법이 성공할 수 있었을지라도 4차 산업 혁명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서로 각 팀의 과정을 공유하며 더 나은 아이디어를 만들고, 거기서 또 다른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구조로 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바뀌고 입시가 바뀌어야 한다.
자녀를 키우며, 병설유치원, 사립유치원, 놀이학교, 영어유치원, 공립학교, 사립학교, 국제학교를 의도치 않게 모두 경험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교육의 격차와 질을 체감했다. 매일 아침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막히는 한강 대로를 건너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부모, 국제학교 진학을 위해 아빠와 떨어져 집을 얻어 사는 엄마, 사립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원치 않지만 몇년간 교회에 다니며 봉사하는 부모 등 자녀에게 더 나은 경험을 주고 싶어하는 많은 부모들을 만났다. 모두 좋은 교육 환경과 좋은 선생님을 찾아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서이다. 내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경쟁을 통해 입학해야 하는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도 경쟁을 통해 그 학교에서 가르치며,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가 교육과정을 통해 차별화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공유하고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의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접하게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내 자녀를 키우며 접한 그들의 방식을 경험하며 그것이 어느 정도 교육에 반영 되었을 것이다.
단순히 그리고, 단순히 암기하는 교육이 아닌 주도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을 익히는 교육,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교육이 되려면 교과서에 국한되지 않는 조금 더 자유로운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 그런 교육 방식을 지향하며 오늘도 아이들과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의 제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비전을 가진 노벨상 후보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어본다. 1학년이지만, 아이들에게 큰 꿈으로 자랄 씨앗을 심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